버스를 타는 내내 손에서 향수냄새가 진동을 했다.
향수의 냄새는 춥고 바람부는 실외에서 따뜻한 버스 안으로 들어서자 마자 기다려 왔다는듯 퍼지기 시작했다. 내 손에서 시작되는 여자향수가 아주 진하게 내 후각을 자극시켰다.
상큼하고 아주 달콤한 그런 냄새..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아주 지독하게 달콤한 그런, 헤어나올 수 없는 첫사랑의 느낌같은 그런 냄새였다. 나는 답답함에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지독한 향이 내 코를 스치며 폐로 스며들었다.
'사랑... 사랑이라니...'
피식 웃으며 아직도 숨막히게 향을 뿜는 내 두 손을 외투 주머니에 찔러넣었다. 버스안에 사람이 드믈다는게 참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새로 산 향수를 공병에 펌핑해 덜어넣다가 순식간에 왼 손에 향수 원액을 엎질렀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어찌 손쓸세도 없이 흘러내린 향수를 허겁지겁 오른 손으로 닦아 내고 말았다.
문제는 여기서 부터였다.
양 손에 묻은 향기는 머리를 어지럽힐 정도로 진하게 베어나왔다. 비누로 손을 닦고 또 닦아도 물이 마르면 금세 다시 진동하기 시작했다.
"하긴 이리 쉽게 없어지면 향수일리가 없지..."
무방비 상태에서 순식같에 엎질러진 향수처럼 나의 첫사랑도 그렇게 찾아왔었다. 누구에게나 다 그렇겠지.. 다른 그 누구도 이렇게 순식간에, 아무 생각 없이, 무방비 상태에서 덥석 찾아왔었겠지..
준비없이 부딭혔던 첫 사랑의 시작 처럼.....
바람 부는 실외에서 전철- 버스같이 따뜻한 공간에 들어서자 흩날리던 향기가 기다렸다는 듯 다시 진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달콤한 냄새가 이내 진동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숨을 들이마시고 있다보면, 어느새 그 달콤함에 무뎌진 내 코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뎌졌다는 느낌을 깨달았을땐 이미 모든게 늦어버린 후였다.
그때가, 버스 안에서 외투에 손을 넣었을 때가 그랬다.
이내 진한 두통과 매스꺼움이 올라왔다. 콧속 깊이 후벼파는 그 달콤함들은 내 머리까지 가득차고, 그리고 내 폐속, 뱃속 몸속으로 퍼져 내 전부를 지배했다.
모든것이 지배당하고 나서부터 시작되는 그 두통과 울렁거림..
지독했다.
헤어나올수 없이 달콤한- 지독히도 달콤한 만큼, 딱 그만큼의 고통이 나를 괴롭혔다. 모두들 그러할까? 미치도록 사랑한 만큼 미치도록 힘들다는, 아주 공평한 듯한 공식 의 해답이 모두들 같았었을까?
향수가 뭍은 손은 주머니안에서 여전히 달콤함을 내뱉고 있었다. 주머니 속에서만 맴돌고있는 향은 조금씩 농축되어갈 뿐 밖으로 드러나지 못했다. 후각이 자유로워진 이 상황과는 별개로 고통의 강도는 높아져 갔다. 이런게 후유증이겠지.
꾸준히 올라가다 어느 순간 정점을 찍고, 고통은 이내 점점 수그러 들었다. 고통에서 자유로워지는 만큼 편안해 진다는 데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렇게 향기는 내 몸 밖으로 밀려나거나 스스로 향이 약해져 사라졌다.
향이 가시고나서 버스가 운행하는 한동안 맑은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그 맑은 공기를 마시는동안 나는 과연 상쾌했을까?
얼마지나지 않아 목적지에 다달았다.
내려야지.
좌석에서 일어서며 꼬옥 끼고 있었던 주머니의 손을 빼냈다. 그리고는 성큼성큼 걸어 버스에서 내리고 건널목을 건너고 출근을 한다. 바람불고 넓은 야외로 다닐땐 달콤한 향내는 짙은 농도를 유지하지 못했다. 가끔씩만 느낄 수 있을정도로 미약하게, 추억도 그런 식으로 기억에서 스며나왔다.
이렇게 나는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보내고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손에서 아직 향수냄새가 난다.
그 달콤한 향기가 내 코로 들어올 때 마다 나는 속수무책으로 설레이고 고조된다. 그만큼 아파 하였음에도.
진한 향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 전부 날아간다.
손에뭍은 향기는, 결국 그날 저녁 늦게나 되어서 자취를 감췄다.
나는 달콤한 향이 났었던, 그리고 이제 내 채취가 풍기는 손등에 코를 가져다 대고 숨을 들이마셨다.
나는 아쉬웠던 거였을까?
후련함과 함께 불쑥 찾아온 그런 기분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나는 상쾌한 건지 알수 없었다....
사랑도 이내 다를까?
또다른 사랑도 이내 다를까..?
- 끝 -
틈틈히 대충 3~4시간 걸린 듯..ㅠㅠ
책 한권 쓰는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닌게야..;;